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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빵 사건과 저작권의 국제적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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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관리자
    조회Hit 4,833회   작성일Date 21-04-30 11:00

    본문

    Ⅰ. 머리말 '구름빵'은 2004년 ㈜한솔교육('한솔')에서 출간된 출판물로 백희나 작가의 첫 창작 아동용 그림책이다. 백 작가('원고')는 이 책으로 2020년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기념상(ALMA)'을 수상하였다. 구름빵은 10여개 국가에서 번역·출판되었고 어린이 뮤지컬과 TV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다. 원고는 2003년 한솔 등과 저작물개발용역계약(통상의 출판계약은 아니나 흔히 '출판계약'이라 한다. '이 사건 계약')을 체결하면서 저작권(제2차적 저작물작성권을 포함하여 저작물에 대한 저작인격권을 제외한 일체의 권리)을 한솔 등에게 양도하고 계약금과 지원금 합계 185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이른바 매절계약). 구름빵의 성공 후 원고는 한솔 등을 상대로 저작권침해에 따른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으나 패소하였다. 이 사건은 출판계의 대표적인 불공정 저작권계약 사례로 언급되고 있다. 문화예술계는 그 결론이 현행법상 부득이함을 전제로 저작권의 포괄적 양도를 제한하거나 추가 보상을 허용하는 입법론을 제기하였고 그에 따라 저작권 계약 자유 원칙을 수정하는 저작권법 전부개정법률안이 국회에 발의되어 계류 중이다(제2107440호). 그러나 종래 논의는 대부분 '국제적 맥락'을 놓치고 있다. 필자는 국제사법(國際私法)의 관점에서 이 사건을 살펴본다.


    Ⅱ. 구름빵 사건의 법적 쟁점과 법원의 판단

    원고는 2차적 저작물작성권을 일체로 양도하는 조항의 무효 기타 계약의 불공정 등을 주장하면서 피고들에게 저작권법에 의한 침해금지 및 저작권 침해로 인한 손해배상 등을 청구하였다. 한솔 등은 이 사건 계약은 단행본에 대한 출판계약이 아니라 유아 대상 회원제 북클럽 상품에 삽입되는 저작물개발용역계약이었고 당시 원고도 저작권양도를 인지하였으므로 불공정계약이 아니며, 신인작가에게 4만부 판매에 해당하는 인세를 지급한 것은 한솔로서도 상당한 위험을 안고 투자한 것이라고 항변하였다. 2019년 서울중앙지법(2017가합588605)과 2020년 서울고법(2019나2007820)은 계약 당시 원고가 신인작가임을 고려하면 저작권 양도 조항은 상업적 위험을 분담하는 측면도 있고 저작재산권 일체를 양도하는 조항이 원고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원고는 상고하였으나 대법원은 심리불속행으로 기각하였다. 한국 저작권법(제45조)상 저작권의 양도는 유효하나 저작권 양도를 아예 금지하거나(독일), 포괄적 사전양도를 금지하는 국가(프랑스)의 법률이 이 사건에 미치는 의미를 본다. 구름빵과 2차적 저작물(애니메이션 등)이 독일·프랑스에서도 간행되었기 때문이다.


    Ⅲ. 법적 쟁점의 검토
    1. 원고의 저작권: 복수국가의 법에 따른 복수 저작권의 다발

    구름빵을 창작함으로써 원고는 한국법과 '문학적·예술적 저작물의 보호를 위한 베른협약'에 따라 모든 체약국에서 저작권을 취득하였고 그에 따라 보호를 받는다. 그러나 원고의 저작권은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하나의 저작권이 아니라 '복수의 국내법에 따른 저작권들의 집합'이다. 이는 저작권법상 저작권이 복제권, 공연권, 2차적 저작물작성권 등 다양한 지분적 권리를 포함하는 '권리의 다발'이라는 의미와 구별되는 국제사법학상의 '다발이론'이다(석광현, 국제사법과 국제소송 제5권(2012), 122면 참조). 이 사건에서 당사자들과 법원들은 한국 저작권법만 문제 삼은 듯한데 이는 이 사건 계약이 한국인·한국 회사들간 계약이라 국제성이 없다고 믿은 탓이다. 특허권·상표권과 달리 등록을 하지 않는 저작권의 경우 당사자들은 외국저작권 양도에 대한 인식이 없고 혹시 있더라도 국제성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외국에서 외국저작권의 이용과 침해가 문제되면 국제성을 부정할 수 없다.

     

    2. 구름빵에 대한 외국저작권 양도의 효력과 외국저작권의 침해
    독일 저작권법 즉 '저작자의 권리 및 인접권에 관한 법률'상 독일 저작권의 양도는 허용되지 않는다(제29조). 그 경우 양도는 무효이나 학설·판례는 이를 전환하여 제31조에 따른 독점적 이용권을 설정한 것으로 해석한다. 한편 프랑스 지식재산권법상 장래의 저작물에 대한 포괄적 양도계약은 무효이다(제L131-1조). 저작재산권 양도계약은 양도 대상인 권리를 개별적으로 열거해야 하고, 양도되는 권리도 계약에 정한 이용목적과 범위 및 이용장소와 기간으로 제한되는데 위 요건이 결여되면 양도는 무효이다(정상조, '저작자의 지위', 저스티스 통권 제181호(2020. 12), 21면 이하). 프랑스법상 양도는 우리 저작권법상 비배타적(채권적) 이용허락에 가깝다고 한다(남희섭, '창작 노동 보호를 위한 저작권법의 과제', 언론과 법 제18권 제3호(2019. 12), 186면 주(註) 41 참조). 이 사건 계약의 준거법이 한국법이더라도, 양도가능성은 외국저작권의 준거법에 따르고 외국에서 외국저작권의 양수인이 누구인가는 보호국법인 외국법에 의하므로 독일법·프랑스법이 규율한다. 만일 독일법·프랑스법의 강행규정에 반한다면 원고의 한솔에 대한 저작권 양도라는 준물권행위의 효력이 부정되므로 그 효과를 검토해야 한다. 포괄적 양도의 무효는 저작권자만이 주장할 수 있는 상대적 무효인데, 실무상 매우 비효율적이기도 하여 개정이 논의되었으나 저작권자대표단체의 반대로 무산되었다고 한다(이 점을 알려주신 조응경 박사께 감사한다). 무효라면 한솔 등과 제3자의 프랑스 저작권 이용은 저작권 침해이므로 원고는 양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 프랑스에서도 제소할 수 있다(브뤼셀 Ⅰrecast 제8조 제1호).

    3. 이 사건 계약과 제2차 저작물 등에 대한 추가 보상
    독일법상 독일 저작권의 양도가 무효이더라도 독점적 이용권을 설정한 것으로 해석하므로 적정한 보상을 청구할 수 있고(제32조), 약정된 보상이 적정하지 않으면 적정한 보상이 주어질 수 있도록 상대방에게 계약 변경에 사전동의할 것을 청구할 수 있으며, 추가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제32a조). 양 조문은 강행규정이다(제32b조). 독일 저작권법상 위 조문들은 저작물이 독일에서 이용되는 한 계약의 준거법에 관계없이 적용된다(제32b조 제2호). 한편 프랑스법상 유효한 범위 내라면 (이용자 또는 양수인은) 저작권자에게 얻은 수익에 비례하는 보상을 해야 한다(제L131-4조). 정액보상이라면 침해로 인해 또는 계약 당시 저작물로부터 받을 수익을 충분히 예측하지 못하여 저작자가 입은 손실이 12분의 7 이상인 경우 저작자는 (이용자 또는 양수인에게) 보상 조건의 변경을 요구할 수 있다(제L131-5조). 다만 보상은 계약 준거법인 한국법이 규율하나 우리 법원이 재판시 독일법·프랑스법 조문의 적용 내지 고려 여부가 문제된다. 프랑스법상 제L131-4조는 강행규정인데 그의 국제적 강행규정성은 불확실하나 가사 그렇더라도 우리 법원이 재판시 제3국의 것이므로 당연히 적용되지는 않는다.


    Ⅳ. 외국저작권에 근거한 원고의 구제

    원고 패소판결이 확정된 이상 원고가 우리 법원에서 구제 받을 길은 원칙적으로 없다. 그러나 당사자들과 법원들이 모두 한국 저작권만을 다루었다면 원고는 외국저작권에 기하여 제소할 수 있지 않을까. 일부청구의 기판력에 관한 판례(명시설)를 따르면 원고가 일부청구임을 명시하지 않았기에 확정판결의 기판력이 후소에 미친다고 주장하겠지만, 관계자들이 모두 외국저작권을 고려하지 않았으므로 전소와 별개 소송물로 볼 수 있다. 후소의 제기를 받은 우리 법원은 통렬한 반성의 뜻을 담아 그런 결론을 수용해야 한다. 본안 판단은 위(Ⅲ)의 검토에 달려 있는데 특히 프랑스 저작권 침해가 문제된다.


    Ⅴ. 맺음말
    두 가지만 언급한다. 첫째, 저작물을 공표함으로써 저작자가 취득하는 저작권은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하나의 저작권이 아니라 복수국가 법에 따른 복수 저작권이고 그의 법적 보호는 국가별로 다르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한국 저작권만 검토하였으나, 국제사법(제24조)에 따라 외국저작권 양도에 관하여 보호국법인 독일법·프랑스법을 적용하였어야 한다. 또한 법원은 독일·프랑스 저작권에 관하여 이 사건 계약이 저작자를 두텁게 보호하는 독일법·프랑스법의 강행규정에 반하는지, 만일 그렇다면 그의 법적 효과를 검토하여 추가 보상을 명하거나, 적어도 국제적 강행규정성과 그 적용 내지 고려 여부를 검토했어야 한다. 그에 앞서 원고가 외국저작권에 기한 구제도 청구하는지에 대해 석명권을 행사했어야 한다. 둘째, 정상조 서울대 로스쿨 교수의 지적처럼 외국저작권의 양도나 이용허락을 포함하는 저작권 계약을 체결하면서, 저작물이 이용되는 외국의 강행적 저작권법이 정한 양도요건(양도가능성 포함)과 추가 보상에 대한 검토 없이 포괄적 양도를 요구하는 문화예술계의 관행은 시정해야 한다. 이런 관행은 저작자의 해외시장에서의 이익에 대한 부당한 탈취시도일 뿐 아니라 한국 국제사법과 보호국 저작권법의 강행규정에도 반한다. 이 사건은 우리 법원과 문화예술계가 국제사법과 국제저작권법의 중요성을 깨닫는 호기(好機)였으나 우리는 이를 놓쳤다. 우리 저작권법의 개정은 계속 추진해야 하나, 종래 논의에서 보듯이 저작권법 지식만으로는 문제를 올바로 해결할 수 없다. 21세기에 한류를 확산시키자면 국제사법과 외국 지재권법에 익숙한 지재권 전문변호사들을 양성하고 외국 변호사의 도움도 받아야 한다. 정작 중요한 과제는 잊은 채 변시합격자 수만 놓고 매년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보기도 민망하다.

     
    ※ 이 글의 작성에 도움을 주신 정상조 교수께 감사드린다.

    석광현 교수 (서울대 로스쿨)  

    법률신문 2021-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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